인도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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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홈 구장은 솔트레이크 스타디움이며 감독은 이고르 슈티마츠다. Blue Tigers (파란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2. 상세[편집]
14억 인구가 무색하게 단 한 번도 월드컵 본선에 오르지 못한 약체 국가이다. 사실 처음부터 약체는 아니었다. 축구 종주국 영국의 가장 큰 식민지였던만큼, 그 시절의 가락이 남아있던 1950~60년대 중반까지는 아시아에서 강호 축에 들었다. 1950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적도 있다. 1938년 월드컵에 처음으로 진출했던 동인도(현 인도네시아)에 이어 아시아에서 2번째 진출이자, 아시아 국가로서 사상 첫 월드컵 진출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인도 측에서 준비가 빠듯한 월드컵보다 2년 뒤 열리는 헬싱키 올림픽 축구 본선 대회에 집중하기로 하며 본선진출권을 반납했다.[8] 이 때문에 4년 뒤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16개국 본선에 진출한 대한민국이 아시아 독립국으로서 월드컵 본선 첫 진출국 타이틀을 얻었다. FIFA는 이 기권에 대해 인도의 1954 FIFA 월드컵 참가 자격을 박탈하는 처벌을 내렸으며, 인도 또한 이에 반발하여 1982년 월드컵까지 아예 지역예선을 불참했다. 인도의 이런 행보는 한국에 행운이었는데 만약 인도의 기권과 그에 이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출전자격 박탈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스위스 월드컵 16개국 진출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9]
사실 인도의 월드컵 진출 또한 따지자면 매우 운이 좋았다. 당시 아시아 예선에 나온 나라는 인도와 인도네시아, 필리핀, 버마 뿐이었다. 당시 아시아에선 대한민국은 독립 직후 분단의 영향으로 정신도 없었고 일본은 2차 대전 추축국으로 출전 금지 신세였으며 패전 이후 여러 복구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중국도 대만과 분열되어 전쟁을 치른 터라 역시 마찬가지였고 아랍권 나라들도 이스라엘과 중동전쟁 문제, 각 나라들의 내부 문제로 정신이 없었다.
물론 예선에 참가한 4개 나라 모두 독립한 지 얼마 안 돼 경제, 정치적으로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던지라, 다른 세 나라가 한 경기도 치르지 않고 기권했다. 즉 한 경기도 안 치르고 월드컵 본선에 올랐던 것. 물론 여기서 인도가 가장 강했기에 어차피 경기를 했어도 인도가 진출했을 가능성이 압도적이긴 했지만 결국 인도도 기권해 버렸으니 무용지물. 게다가 1950년 당시 인도의 Elo 랭킹은 36위로 1950년 월드컵 진출국인 미국, 볼리비아보다도 높은 순위였다. 결코 호락호락한 팀이 아니었다.
그렇긴 해도 다른 국제 대회에서 인도 축구는 1951년, 62년 아시안 게임 축구 금메달 및 1956 멜버른 올림픽 축구 4위[10] 에 올라 아시아 나라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축구 4강에 올랐다.[11] 1964년에는 아시안컵 준우승(우승은 이스라엘)도 차지하며 아시아에서 강호였다.
비록 소련 축구 국가대표팀과 1955년 원정 친선 경기에서 1:11로 대패를 당하긴 했지만, 이 시절 소련은 66월드컵 4위를 차지한 축구 강국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이후로부터 세계 축구의 흐름에 뒤처지며 축구 실력은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여 약체가 되어나갔고 1986년 월드컵 지역예선에 36년 만에 나섰는데 1차 예선에선 방글라데시와 태국, 인도네시아에게 2승 3무 1패를 거두며 조 2위로 탈락했고 1990 월드컵 예선도 아예 불참해버렸다. 이후로는 최종예선도 못 가고 있는 상황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선 2차 예선에서 아랍에미리트에게 1무 1패(0:3, 2:2)로 탈락했다.
하지만 남아시아 챔피언십 대회[12] 에서는 9번이나 우승한 최다 우승국가로 적어도 인도 근처 지역에선 강호(?)인 셈이다. 남아시아 축구대회가 현재까지 14번이 열렸으니, 무려 14번 중 9번을 인도가 우승할 정도로 근방에선 따라올 자가 없다. 2013년 네팔에서 열린 대회에선 첫 경기 네팔전에서 1-2로 패하고도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아프가니스탄에게 0-2로 패하며 7번째 우승은 실패했다. 2013 남아시아 챔피언십 상세한 이야기. 그러나, 2015년 대회에서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제치고 우승했고 2021년, 2023 대회도 우승하면서 9번으로 최다 우승국 기록을 갱신했다.
거꾸로 AFC 챌린지컵에서는 대회 초반에는 잘하다가 갈수록 동네북이었다. 2006년 1회 대회는 8강에 진출했고 2008년 자국에서 열린 2회 대회는 우승했지만 2010년에는 북한에 0-3으로 진 것을 비롯하여 조 꼴찌로 탈락하고 2012년 네팔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북한에 0-4, 타지키스탄, 필리핀에 0-2로 지면서 1골도 못 넣고 또 조 꼴찌로 탈락했다. 2014년 마지막 대회에서도 라오스와 투르크메니스탄에 덜미를 잡혀 일찍 탈락했다.
한국과 역대성적은 3승 2무 14패로 열세에 있다. 1958년 5월 31일 일본 도쿄 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첫 친선경기를 벌인 게 첫 인도와의 축구경기인데 3-1로 한국이 이겼다. 1966년 8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메르데카컵 3·4위전에서 2-3으로 진 게 마지막 패배이며, 1976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메르데카컵에서 8-0으로 이긴 게 가장 크게 이겨본 역대 인도전이다. 가장 최근에서 겨뤄본 경기는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조예선으로 한국이 4-1로 이겼다.[13]
2018년 남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여유롭게 결승에 올랐으나 조별리그에서 이긴 몰디브에 1-2로 패해 8번째 우승은 실패했다.
2018년 10월 13일 중국과 평가전을 가졌는데 둘이 치열하게 경기를 벌인 끝에 무재배로 끝났다. 사실상 중국에게 치욕이었는데 중국 안방인 쑤저우 경기장에서 수 만여 명 중국 팬들이 보는 앞에서 치러진 경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기 전 마르첼로 리피 중국 대표팀 감독은 중국은 아시아 모든 나라를 이길 수 있다.라는 인터뷰를 하고 경기에 임해서 피파랭킹으로 76위 중국이 97위 인도를 상대로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본선에 진출, 개최국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태국과 맞붙게 되었다. 태국과 3위 경쟁을 할 것이라고 예측되면서 서로 혈전을 벌이리라 예측이 나왔지만 완전히 4-1로 뭉개버렸다. 태국이 자랑하는 주전인 J리거 차나팁 송크라신은 별다른 활약도 못했고 거꾸로 인도가 자랑하는 수닐 체트리는 2골을 넣으며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태국과 인도는 각자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대회인 스즈키컵 최다 우승으로 서로 자기 지역의 최강급 우승후보인데 인도가 압도했다. 아시안컵을 통해 드러난 인도 축구의 특징은 피지컬. 이 대회에 참가한 인도 팀의 평균 신장은 180cm로 참가국 가운데 9위이며, 음식 안 가리고 신체단련을 중시하는 시크교도들이 기존 인기종목인 크리켓과 필드하키를 넘어 축구계까지 진출하면서 남아시아권에선 피지컬로 당해낼 팀이 없어졌다. 아직 한 경기를 치렀을 뿐이지만 이 경기를 통해 인도가 괜히 중국과 비긴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2차전인 아랍에미리트전에서는 0:2로 완패했으며, 3차전인 바레인전에서는 후반 인저리 타임에 실점하면서 0:1로 패배, 결국 A조 최하위로 떨어지면서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주요 선수로 포르투갈 2부 리그, 미국 MLS 경력이 있는 수닐 체트리가 있다. 현 인도 A매치 최다골 기록자. 수닐 체트리 이전 인도 축구의 레전드로는 바이충 부티아라는 선수가 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바이충 부티아를 박지성, 수닐 체트리를 손흥민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의 인도 축구계에서 두 선수의 위상은 대단하다. 바이충 부티아는 1999년 잉글랜드 하부리그인 베리 FC에 입단하며 인도인으로는 2번째로[14] 유럽에 진출한 선수였으며, 3년동안 37경기에 출전했다. 주전으로 뛰지는 못했지만 유럽 무대의 개척자로써 업적은 충분하다. 또한 수닐 체트리는 바이충 부티아의 국가대표 은퇴 이후 대표팀 에이스 지위를 물려받았고, 미국 MLS와 포르투갈 명문팀 스포르팅 리스본에도 진출하는 등[15] 해외진출에도 성공한다. A매치 142경기 92골을 넣으며 인도 축구 역사상 최다 A매치 골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손흥민과 다른 점은 해외에서는 별다른 족적을 못 남겼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인도 올해의 선수상 6회 수상, AFC 아시안컵 본선 통산 4골으로 인도인 최다골 기록 보유 등 인도 내에서 독보적은 기록을 쌓은 레전드라고 할 수 있다.
현재는 인도 대표팀에서 해외파는 전무한 상황인데, 꼭 부정적이라고 볼 수만은 없는 것이 과거와 달리 국내 리그가 많이 발전한 것이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 10년 동안 인도 축구는 큰 변화를 겪었는데 바로 인도 슈퍼 리그가 2014년 출범하였고, 이 새로운 리그에 인도 내의 스포츠 자본이 몰리면서 은퇴를 앞둔 뛰어난 레벨의 선수들이 많이 진출해서 뛰었기 때문이다. 인도 슈퍼 리그는 단숨에 인도 팬들의 관심을 끌었고, 당초 3개월짜리 초단기 리그로 운영되던 슈퍼 리그는 아예 연중 정규 리그화가 되어 기존의 인도 I리그와 동등한 인도 최상위 리그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따라서 인도 선수들은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자국 프로축구에서 뛸 수 있게 되었고, 대표급 선수들이 거의 대부분 슈퍼 리그에서 뛰고 있다. 아예 2024-25 시즌부터 슈퍼리그는 아예 인도의 단일 최상위 리그가 될 예정이며 기존 I리그는 슈퍼리그 하부리그, 즉 2부 리그로 재편될 예정이다.
2022년 8월 16일 피파로부터 정부의 과도한 축구협회 간섭으로 제재를 받았다.
현재 유니폼 스폰서는 six5six 이다.
3.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편집]
4. 현재 선수 명단[편집]
[16]
5. 역대전적[편집]
5.1. FIFA 월드컵[편집]
5.2. AFC 아시안컵[편집]
AFC 아시안컵 역대 순위 : 19위
5.3. 남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편집]
6. 청소년 대표팀[편집]
6.1. U-23 대표팀[편집]
6.1.1. AFC U-23 아시안컵[편집]
6.2. U-20 대표팀[편집]
6.2.1. AFC U-20 아시안컵[편집]
6.3. U-17 대표팀[편집]
6.3.1. FIFA U-17 월드컵[편집]
6.3.2. AFC U-17 아시안컵[편집]
[1] 힌디어[2] 영어[3] 2023년 10월 기준https://www.fifa.com/fifa-world-ranking/IND[4] 2023년 10월 19일 기준[5] 1948, 1952, 1956, 1960[6] 4강전 유고슬라비아에 4:1로 패하고 동메달 결정전에서 불가리아에게 3:0으로 패하여 최종 4위로 마쳤다.[7] 1993, 1997, 1999, 2005, 2009, 2011, 2015, 2021[8] 예전부터 인도의 1950 월드컵 진출 포기가 맨발로 월드컵 경기를 소화하게 해달라고 주장하다가 거부되어서 진출을 포기한 것이라는 설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는데, 이는 사실과 다를 공산이 매우 크다. 이미 1948년 런던 올림픽 축구에서부터 FIFA는 '경기 중 축구화 의무 착용'을 규정에 명시하여 적용했으며, 해당 대회 본선에 진출권을 얻었던 인도가 이를 모를리가 없었다.[9] 한국의 1954 스위스 월드컵 16개국 진출 이후 아시아의 월드컵 지역예선은 유럽,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와 합동예선으로 합쳐서 16개국 본선 진출 자리가 1자리가 되고 82월드컵부터 24강으로 확대되면서 아시아+오세아니아 티켓이 2장으로 늘어지고 86월드컵 24강부터 아시아 단독 2장으로 확대되면서 더 이상 중동 팀들과 박 터지는 서바이벌을 할 필요가 없어진 1986 멕시코월드컵 24강 부터 진출 가능했다.[10] 4강전 유고슬라비아에 4:1로 패하고 동메달 결정전에서 불가리아에게 3:0으로 패하여 최종 4위로 마쳤다.[11] 그 이후에 올림픽 축구에서 4강에 오른 아시아 국가로는 일본(1968년 동메달, 2012년 4위, 2021년 4위), 이라크(2004년 4위), 대한민국(2012년 동메달)이 있다.[12] 인도, 네팔,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부탄, 몰디브, 파키스탄, 스리랑카가 참가하는 대회[13] 이 경기에서 손흥민이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다.[14] 1930년대 모하메드 살림 이라는 선수가 셀틱에 진출한 적이 있다.[15] 다만 스포르팅에서는 실력이 안 되어 B팀에서만 뛰었다.[16] 2022년 5월 29일 기준.[17] 제2차 세계대전 후유증과 한국전쟁 발생으로 지역예선에서 다른 팀들이 줄줄이 기권하는 바람에 공짜로 월드컵 14개국 본선에 진출할 기회를 얻었지만, 맨발로 축구를 하게 해달라는 인도 축구협회의 요구가 FIFA에 의해 묵살되면서 14개국 본선 조별리그 배정까지 끝난 상태로 기권하고 말았다. 월드컵 사상 가장 어이없는 이유로 기권. 하지만 이러한 명분의 이면에는 당시 인도가 독립한지 3년밖에 안된 신생국으로, 파키스탄 분리와 티베트 사태로 인한 안보 문제 때문에 월드컵을 포기했다는 설이 있다. 이는 당시 한국전쟁 발생되어 참전으로 기권한 터키도 마찬가지.[18] 월드컵 본선 진출 비율[19] 1956~1964 아시안컵은 지역예선 통과 후 본선이 4강 풀리그로 진행하는 대회였다.[20] AfC U-23 아시안컵 본선 출전 비율[21] 이란과 공동우승[22] 이 대회부터 3.4위전 폐지[23] AfC U-20 아시안컵 본선 출전 비율[24] FIFA U-17 월드컵 본선 출전 비율[25] AFC U-17 아시안컵 본선 출전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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